렌즈로 보는 세상/사진 이야기

미친남편을 구한 아내

돌파리 작가 2017. 3. 27. 19:15


일요일..졍오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고소한 참기를 냄새가 진동하는 걸 보니 아내는 김밥을 만들고 있다. 잠시 후...아얐..!! 아내가 김밥을 썰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에 연고를 바르고 밴디로 감아 주었다. 요리하다 칼로 손가락을 다친 건 결혼 후 처음 보는 일이다. 


오늘은 산 골짜기의 파랗게 이끼낀 돌덩이에  하얀 눈이 모자를 쓴 듯 눈이 얹혀있는계곡의 물을 촬영하리라 맘 먹고있던 날이다.
집에서 동쪽으로 30분정도 달리면 이미 해발 1600m의 산 허리로 접어든다. 지난 밤에도 눈이 내린 것처럼 전나무에는 눈이 하얗게 그림처럼 쌓여있다. 지난 겨울에 점 찍어 둔 계곡을 건너는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지형을 정찰하러 긴겨 울 부츠를 신고 눈 쌓인 산비탈을 살금살금 내려간다. 계곡은 다리 밑 급경사로 15m 정도 아래에 있고 눈이 일년내내 녹으면 물이 흘러 내린다. 계곡 물은 청정수보다 더 시리도록 맑고 차다. 산비탈의 눈은 무릅 위까지 빠질 정도로 깊다. 4발(손,다리)로 엉금어금 기듯이 내려가는데 중간에서 갑자기 눈이 슬라이딩을 하며 나를 함께 밀고 쑤~욱~원치 않는 방향의 계곡으로 끌고 순식간에 미끄러져 간다. 아아~악~~ 나는 비명을 질렀다.
정신차리고 허부적거리며 일어섰는데 나는 이미 얼굴만 내밀고 물 속에 잠겼다. 다행히도... 이미 반 상실한 정신은 계곡 물이 찬지 뜨거운지 느낄 틈이 없었다.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물속에서 기어나와 눈쌓인 비탈을 엉금엉금 기어서 한참만에 다리 위로 올라왔다. 두툼하게 입은 자켓과 긴겨울 부츠 속으로 가득한 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제여야 살았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갑자기 추위가 온 몸을 흔들어대며 얼리기 시작한다. 자동차에 히터를 최대로 올리고 옷을 모두 벗었다. 그야말로 대낯에 차 안에서 홀라당 벗었다.(상상금지)...ㅋㅋㅠㅠ
자동차 문만 열고 손만 간신히 내밀며 옷을 모두 비틀어 짜서 다시 입었다. 얼마 후... 아직도 흥건하게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동차 스피커에서는 "장미여관"의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가 정적이 흐른 고요한 산속에 처연하게 흩어진다.
불현듯 미친 오기가 불꼿처럼 솟아오른다. 아무것도 담지 못하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다시 비탈진 계곡을 발로 다져가며 하나둘씩 계단을 만들었다. 무려 25 계단을...
계곡은 내가 그림 그렸던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뛰는 심장을 진정해 가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침에 아내가 손가락을 칼로 베인 기억이 났다. 나의 액땜을 아내가 대신해 준 것 일게다. 분명히...아~ 오늘도 아내가 미친 남편을 살렸구나. 사랑해 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