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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걷다

친구들과 철 없이 뛰어다니던 시절 세상을 노루처럼 달리던 청춘 운명이라며 죽자 살자 하던 사랑까지...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던 시간은 그 자리에 머무는 줄 알았다 시간이 무섭도록 냉정하다는 것을 시간을 다 걸어온 뒤에 알았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내가 걷는 것이라는 것도 시간을 다 걸어온 뒤에 알았다.

달에서 행복한 친구

아이들이 그려 놓은 낙서의 무게에 기울어진 담 벼락이 힘겹게 버티고 달이 머리에 닿는 산 동네에서 키 작은 내 고향 친구는 가난으로 허기를 채우며 산다 어둠을 흔들어 깨우는 재봉틀 소리는 가파른 골목길은 밤마다 돌아다니고 술 취한 친구의 혀 꼬부라진 노래에 누렁이가 짖으면 담장도 놀라서 비틀거린다 시골에서 이장네 밭 떼기를 부쳐 먹다 댐으로 수장된 고향 눈물로 채우고 홀 어머니를 치마 끈 잡고 따라와 금호동 산 꼭대기에 자리를 틀었는데 올 겨울 재개발로 또 다시 헐린다며 엄동설한 속의 아이들이 눈을 찌르고 쓰러진 소주병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친구야 이 넓은 땅에 내 가족 누울 땅 한 평 없으니 십 년 지기 달 친구가 넓은 땅 다 차지하고 달에서 함께 살잔다 친구의 혀 꼬부라진 노래가 담장을 밀던 밤 누렁이..

심연

뙤약 볕에 익은 나이를 등에 지고 허물어지는 노을 빛을 깍아 비탈진 서해 바다에 백만 갈래의 이랑을 일구고 백만 개의 씨앗을 뿌려 가슴으로 덮었다 해오름에 쌓아 올렸던 무지개 꿈은 파도처럼 함성을 지르며 일어섰지만 밀물은 육지의 등을 밀고 썰물은 큰 입 열어 꿈을 삼켰다. 정신없이 달려온 서해 바다에 그리움을 엮어 바다 길을 만들었지만 늙은 해시계가 천천히 걸어갈 때마다 뭉텅 뭉텅 기억을 베어가는 지독한 통증들... 가슴에 화살처럼 꽂힌 추억 하나 뽑아내자 바닥에 툭 떨어진 그리움 한 덩어리 파도가 달려와 덮썩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