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눈물
내가 태어나서 자라던 시골은 장터까지 십리를 걸어야하고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2번 다니는 시골이었다.
7일마다 장이 서는데 어머니는 장날에는 꼭 장을 보러 가신다. 어머니가 장에 가시면 나는 동생하고 목을 길게 빼고 마을 입구에 서서 장에서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기다린다.
해질 무렵 석양을 등에 붙이고 장에 가신 어머니가 보따리를 머리에 얹고 양 손에도 보따리를 들고 오시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멀리 보이는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어머니 손에 있는 보따리를 받아 든다.
“엄마.내 운동화 사 왔어요?”
열흘이 지나면 가을 운동회가 시작한다. 이미 몇달 전부터 운동화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어머니는 매번 다음 장날 사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오늘이 어머니가 약속한 장날이 이미 세번이나 지났다. 그러나 오늘도 운동화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실망할 것을 이미 알아채신 어머니가 지난번과 같은 말씀으로 나를 달래 듯 위로를 하신다.
“낼 모레 누렁이 새끼 3마리 팔아서 틀림없이 사줄께.”
우리집에 나와 가장 친한 친구 누렁이가 새끼를 3마리 낳았다. 지난 장날도 누렁이 새끼를 팔아서 운동화를 사주겠다고 하셨지만 내가 울고불고해서 어머니는 포기하신줄 알았다. 나는 어머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단호하게 반대했다.
“엄마, 그건 안돼. 누렁이가 엄청 슬퍼할 거야.”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셨다. 그때 나를 내려다 보시던 어머니의 미소진 모습 뒤에 가리워진 서러운 얼굴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장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화로에 벌건 숫불을 담아 작은 술상을 차려서 할아버지가 계신 안방으로 들고 들어가신다. 방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우리에게 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신다.
"너희들은 밖에 나가 놀아라"며 등을 밀어 낸다.
곧 할아버지 방 안에서 고기 익는 냄새가 떼지어 문틈으로 도망쳐 나온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냄새가 마당을 가득하게 채운다. 나는 마당을 일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커다란 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누렁이도 덩달아 나를 따라서 마당을 뛰면서 돌고 돈다. .마당에 손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셨는지 잠시 후 할아버지가 안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네, 할아버지”
나는 망설임 없이 한 걸음으로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잘 구어진 고기(소 지라)를 한 점을 입에 넣어 주신다.
"아~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고기가 있구나”.
세상에 다시 없을 것 같은 맛있는 고기 한 점을 입에 오물 거리며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한다.
“내가 나중에 어른이되면 돈 많이 벌어서 배가 터지도록 사 먹을거야"
주말이라 늦잠을 자고 일어 한인타운 마트에 간 아내에게 카톡을 날렸다. 삼겹살, 족발 ,갈비살 ...
얼마 후 아내가 장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돌아왔다.
문득...아내의 모습 위로 어머니의 서러웠던 얼굴이 지나간다.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지낸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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