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로 보는 세상/시간을 걷다

아내의 신발

돌파리 작가 2020. 9. 19. 12:22

“여보, 미역국, 배추 된장국은 10 개 씩 비닐 팩에 담아서 냉동고에 넣어 두었어. 팩에다 이름을 써 붙였으니까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아내는 자동차 안에서 주문 외우듯이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삼겹살 돼지고기 매운 무침도 6 팩에 나누어 담아서 냉동고에 얼려두었으니까 볶아 먹을 때마다 채소만 추가로 넣으면 돼. 자기가 할 수 있지?
“음..”
나는 앞만 보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나물 무침하고 장 조림 밑반찬은 냉장고 앞 잘 보이는 곳에 두었으니까 상하기 전에 미리 먹고…”
“네 알겠습니다 마님~”
아내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계속해서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청국장하고 닭 볶음탕은 냉장고 맨 위 칸에 있으니까 며칠 만에 한 번씩 끓여놔야 상하지 않으니까 잊지 말고…”
햄버거 피자를 좋아하는 나에게 밖에 나가서 사 먹지 말고 집에 있는 음식으로 해결하라고 많이 준비해 놨다는 당부는 이미 몇 번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녹음을 하던지 노트에 받아 적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입을 꾹! 닫았다.
아내는 토론토 딸에게 떠나기 열흘 전부터 매일 집안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복을 거듭하며 주입하려 했다.
딸 애가 지난 해 출산해서 휴가를 받고 이달 말이면 끝나 복직을 한다고 아내에게 손주를 부탁하였다. 더욱이 요즘 미친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무작위로 공격하는 전쟁 중이다. 이 와중에 누구에게도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 외할머니를 단숨에 달려가게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날마다 화상 채팅으로 손주의 재롱을 행복해하던 아내가 싫다고 거절할 리가 없다. 어머니의 용기와 손주 사랑 앞에서 코로나의 두려움은 아내에게 한낮 사치에 불과했다.
아내는 막상 떠나려 하니 집에 홀로 남았을 내게 미안하고 안타까움 때문에 잠시 고민은 했지만 딸의 부탁을 거절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나도 함께 가기를 원했으나 거절했다.  아내는 나를 잘 알기에 내가 거절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손주와 산책하는 것이 그림같이 즐거울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두 세 달을 딸 네 집에서 5 식구가 -재택근무하는 사위를 포함해서- 거주한다는 것이 나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겨울에도 한 달을 함께 있었는데 손주와 놀아주는 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내 사 생활은 잠사도 가질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아내를 국내선 출입구에 내려 놓았다. 밴쿠버 공항은 을씨년스럽게 텅 비어 스산하기까지 했다. 코로나의 습격이 세상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숨 막히게 한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였다.
평소 같으면 공항에서 출국할 때까지 기다렸다 손 흔들고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공항 건물 출입 조차 까다로워져 코로나는 작별 인사도 편하게 허용하지 않았다.
아내는 공항 안으로 함께 들어가려는 나를 막아섰다.
아내는 밖에 내려 놓고 돌아가는 내 자동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백 미러에 비쳤다. 왈칵 눈물이 솟았지만 바위처럼 꾹 참았다.
둬 달 후 다시 만나겠지만 또 다시 짧은 작별이다. 문득 자동차 옆자리가 휭 하다. 자동차의 CD를 켰더니 “셀린 디온”의 “The power of love”가 자동차 안을 가득히 채웠다. 
 
현관 문을 밀고 들어서니 작은 체구의 아내 모습으로 채워졌던 빈자리가 썰렁하다.
현관에는 아무렇게나 흩어진 손바닥 만한 신발에서 아내의 냄새가 났다. 거실 한 켠에는 떠나기 전에 미처 세탁기에 넣지 못한  아내의 셔츠와 양말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아내의 물건들을 치우지 않았다. 아내의 체취와 함께 있다는 걸 지우고 싶지 않았다.
병 쟁이라서 종합병원이라 불릴 만큼 늘 살얼음 판을 걷는 듯하게 살아온 아내다.
바람 불면 넘어질 듯 손바닥 하나로도 가리어지는 작고 왜소한 아내의 등판이 주방에서 서성거린다.
지금의 삶은 예전의 풍요로움에 비해서 빈약하지만 이것은 안 된다, 저것은 먹지 마라 라고 잔소리하는 아내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나는 늘 기도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내보다 몇 개월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래야만 내가 아픈 아내를 간병하고 보낸 뒤 나의 빠른 걸음으로 겁 많은 아내를 뒤 따라가 동행해 줄테니까…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잘 도착했다고, 식사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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