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로 보는 세상/시간을 걷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

돌파리 작가 2011. 6. 23. 17:45

산간벽지에서 자라던 어린시절, 우리집에는 항상 개를 키웠다.

늘 두세마리가 집안에서 뛰어놀았는데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독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DOG을 아마 이름으로 착각하고 그렇게 불렀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른들은 집에서 기르던 개를 적당한(?) 시기에 먹어 치웠던 것 같다.

아마 내가 보신탕을 스스럼없이 먹기 시작한 것은 어린시절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 길들여 진것일 게다.

내가 중학교시절부터 기르던 개가 있었는데 아주 잘 생기고 덩치도 커서 힘도 세고 싸움도 동네에서는 감히 도전 할 만한 개가 없었다.

타이거라는 이름 그대로 아주 멋진 놈 이었다.

거의 십년 가까이  함께 살아서 우리가족처럼 정이 들었고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내가 군에 입대하고 어느날 휴가를 나왔는데 큰어머니께서 보신탕을 해 놓았다고 한대접 걸죽하게 퍼주었는데 아주 맛있게 먹엇다.

문득 개 생각이나서 그놈을 찾았더니

큰어머니 왈, 내가 방금 먹은 한대접이 그놈이라고 하는게 아닌가?

나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뒷 담벼락에 기대러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로도 나는 개를 좋아하였지만 어머니께서는 개를 싫어하셔서 늘 구박을 하였다.

 

장가들고 몇번 개를 키우고 싶었지만  집사람이 워낙 강하게 반대를해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딸아이가 국민학교 1학년이 되던해 무조건 푸들 한마리를 사들고 집으로왔다.

나와 딸아이는 온통 "지돌이"-딸이름이 지은이 이니까 동생이라고-에게 정성(?)을 쏟았는데 강아지 때문에 나와 아내의 다툼은 갈수록 더해만 갔다.

급기야는 집안의 평화를 위하여 지돌이를 포기해야 된다는 비장한 결론을스스로 내릴 수 밖에없는 심각한 상황까지 도래하였다.

할수없이 친척집에 집에 양자를 보냈는데 지돌이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그후 나는 개보다는 새는 집안의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고 집사람응 열심히 꼬득여 승락을 얻어냈다.

중국산 상사조라는 새인데 우는 소리가 매우 아름다우며  한쌍이 아니면 살 수 없을 정도여서 상사조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조류잡지까지 사다가 공부해가면서 우리는 열심히 상사조를 키웠다.

계란 노른자만 빼서 좁쌀과 섞어 했빛에 적당히 말려 모이를 만들어 주었으니 정성도 대단했지.

아파트 발코니에서 키웠는데 좁쌀 찌꺼기가 발코니 드레인을 타고 아랬집으로 내려 간다고 아래층 사람과 싸움까지하는 진풍경을 연출하며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새를사랑햇다.

여름 휴가철이되었다.

우리는 발코니 문을 단단히 닫고 물과 먹이를 일주일 분 가득 넣어주고 휴가를 떠났다.

일주일의 휴가에서 돌아와 곧바로 발코니를 여는 순간 발코니는 찜질방 한증막 이상으로 푹푹푹찌고 있었다.

섬찟한 마음에 새장부터 눈이 갔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마리는 이미 죽어 있었고 나머지 한마리는 온몸에 물집이 생겨 죽기 직전에 겨우 눈을 껌벅이고 있었는데 아마 그게 마지막으로 우리를 보고 죽으려했던 것 같다.

그날밤 한마리마져 죽었지만 그동안 불구덩이 같은 곳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을까 생각하며 아내와 딸은 저녁내내 울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서 이제는 정 붙지 않는 생물과 살기로하고 열대어를 키우기 시작했다.

열대어는 보기는 좋지만 워낙에 병에 약하고 온도에 민감해서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물을 갈아 줄때도 기존 어항의 온도와 동일한 온도를 유지해야하고 한마리가 병이 들면 금방전염되기 때문에 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툭하면 자정에 뛰어나가 수족관 집 문을 두드리며 약을 사오기가 한두번이 아니고 밤을 새워물을 뎁히워 갈아주기를 한달에도 둬번씩...죽을 맛 이었지만 우리는그래도 열심히 키웠다.그러던 어는날 심한 부부싸움 끝에 내가 어항을 깨뜨리고 말았다.

그뒤로 우리는 열대어 얘기를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다시 일년 후

대전에 살때 나는 거금(사십오만원)을 주고 생후 2개월된 중구산 치와와를 사왔다.

물론 아내와는 사전에 의논없이-의논하면 안된다고 할 것이 뻔 할떼니까-느닷없이 입양을 시켰다.

일단 집으로 입양이 되었으니 버릴 수도 없고 물론 굷길수도 없을테니 집사람도 어쩔수없이 보살펴 주다보면 정이 들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예상되로 적중하여 집사람도 이뻐하고 귀여워하기 시작했다.

외출할때는 항상 주머닌에 넣고 다니기도하고 ...또 어릴때부터 강하게 키워야 된다고 냉기가 가득한 방에서 재우기도 했다.

입양 후 둬주가 지나서 강아지가 감기에 들었는지 상태가 이상해져 진찰을받았는데 생후 5주가 조금 넘은 강아지라서 항체가 약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하였다.

나는 퇴계로 개장사에게 분명히 생후 두달되었다고 해서 사왔는데 이게 무슨 청천병력같은소리인가?

우리는 부랴부랴 강아지를 서울강남의 유명하다는 병원으로 후송하였는데 의사는 이미 시기를 놓친 것 같지만 최선을 다 해 보겠다는 말만 듣고 강아지를 입원시켰다.

우리는 매일 강아지의 안부를 확인했지만 결국 입원 사흘 후 지돌이는 주인의 무지로 생후 두개월도 못되어 그렇게 우리곁을 떠낫다.

그때 지돌이가 떠난 후 가장 많이 울며 슬퍼한 사람이 바로 집사람이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뒤로 나는 아니 우리는 절대로 정을 붙이는 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후 십년이 지나서 나는 또 다시 "다이애나"라고 이름을 지은 황금색 "골든리트리버"  강아지-강아지라지만 웬만한 개 크기-를 한마리 사무실에 숨겨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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