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로 보는 세상/시간을 걷다

이별하러 가는 길

돌파리 작가 2011. 7. 5. 17:39
찬바람이 매섭던 10년 전 겨울 1월 중순의 어느날. 아내와 나는 가게문을 닫고 퇴근하던 저녁에 6차선의 대로에서 바퀴가 탱크처럼 높은 트럭에 정면충돌로 받히는 대형사고를 당했다. 지워버리고싶은 그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나는 이 세상을 떠나는 피할 수 없는 순간에 직면해 있슴을 알았다.
날카로운 금속음을 울리는 싸이렌 소리와 구급요원의 다급한 무전소리는 내가 지금 죽음의 늪으로 빠져가고 있슴을 알 수 있었다. 떠지지 않는 눈 안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홀로 남게될 딸이였다. "나와 아내가 함께 떠나면 홀로 남은 열여덜살 딸은 어쩌란말인가, 제발 아내만이라도 살아서 딸과 함께 살아야 할텐데..."라는 안타까움으로 의식 무의식 중에서도 아내의 안부를 물으며 아내와 딸의 생각으로 죽음이 내게 다가오는 공포 따위는 미처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앰브란스의 다급한 싸이렌 소리에 몸을 뉘인 나는 계속해서 아내의 상태를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아내는 괜찮다"는 대답을 구급요원에게 들으면서 그제서야 안도하면서 세상과 작별인사도 하지못한채 죽음으로 향하던 찬바람 불던 낯선 도시의 겨울저녁
다행히 아직은 때가 아닌 운명이 남아있어선지 불행 중 다행으로 얼굴과 머리가 찢겨지는 외상으로 몇일 치료 뒤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죽음... 내가 느닷없이 경험했던 죽음으로 향해 달리던 길에는 칠흑같은 공포도 없었다. 다만 사랑하던 사람에게 못다해 준 사랑의 아픔과 이제부터는 그들이 스스로 감내해야하는 고단한 삶에 무게와 영원한 작별의 슬픔을 감당해야하는 그들의 안타까운 아픔이라는 것이다.

엊그제,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하던 오전에 카메라를 메고 동네를 여기저기 웃거리며 걷고 있는데 핸드 폰이 띠앙띠앙 울렸다.
여보세요? 임선생님이시지요?
네, 그런데요...
저는 문인협회 K00입니다.
아~네, 안녕하세요?
저....J 선생님 남편이 돌아갔는데 내일이 장레식인데 모르고계실 것 같아서 알려드릴려구요...
누...누..누구요? J...J00 선생님 남편이라고하셨나요?
네...갑자기.. 지난 주에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온 몸에 퍼저 6일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대요.그 진단받고 이틀 후에 돌아갔셨답니다. 어제...그래 낼이 장례식이라고해서....
아니..어떻게 멀쩡하게 건강하던 분이 이틀만에 그렇수가...
그러게요, 정말이지......
나는 전화기를 끄지도 않고 그냥 멍하니 들고 있었다. J선생은 문학활동을하면서 특별히 가깝게 지내던 분이다. 그 남편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고 퉁퉁해서 건강해 보이던 분으로 나도 잘 아는 교회집사님이였다. 주일이면 교회마당에서 주차 안내를하고 행사 때면 언제나 힘든 곳에서 땀을 흘리시던 분으로 기억한다. 그런 분을 아무런 준비도없는 가족만 뎅그마니 남겨놓고 하나님이 훌쩍 데리고 가셨단말인가? 아직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아이들하고 J선생님은 어떻하라고....

죽음...어느 날 예고도 없이 나타나 훌쩍 데려가고 또는 악마처럼 오랜동안 가슴을 비틀어대며 서서히 찾아와서 사랑하던 사람을 사랑하던 이들로부터 송두리째 빼앗아가 버린다. 누구도 에외없이 아무런 이별의 준비도 없는 이에게 조차도 죽음은 그렇게 덥섞 악마의 이빨로 물고가 버리기도 한다.
다음 날 장례식장엘 갔다. 가족과 교인 그리고 문학활동하던 회원들과 몇몇의 친구들이 검은정장을 입고 앉아있었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몰래 훔치느라 훌쩍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고인을 전송하는 예배가 진행되고 찬송가가 숙연하게 장례식장을 가득히 차고 돌았다.
눈 주위가 퉁퉁부은 J선생의 손을 꼭 잡고 힘내시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슬픔이 극에달하면 눈물도 안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쏟은 눈물로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을텐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그를 보고 나도 함께 울었다.
장례예배가 끝나고 다과를하며 아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우리는 돌아가신 분의 얘기에서 자연스럽게 일상의 화제로 돌아갔다. 사진은 어떻게해야 잘 찍는가부터 요즘 글은 안쓰시는가, 장사는 잘되는가 등등 잡다구니한 얘기까지....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퍼부을 듯한 회색빛 구름으로 덮힌 하늘 아래 장례식장 앞 화단에는 고개를 떨군 분홍색 제랴늄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슬픔보다 더 큰 허망한 공허를 가슴에 안고장례식장을 떠나 가게문을 열고 나도 본연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손님을 반갑게 웃으면서 맞이하고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길래 한참을 수다를 떨고...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분의 갑작스런 죽음의 충격과 남겨진 가족의 아픔을 공유했던 순간은 내 기억에서 이미 하얗게 씻겨지고 있었다.그리고 세상은 어제와 다름없이 분주하고 시끄럽게 바삐 돌아갔다.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발 밑에 개미 한마리가 밟혀 죽은 것처럼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고 또 흘러간다. 사람은 잊어야만 또 다른 기억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애완견만도 못한 인간의 이기적 감정의 양면성이 오늘처럼 싫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감히 예측할 수도 없는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머리가 하얗게 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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