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로 보는 세상/시간을 걷다

아주 작은 꿈

돌파리 작가 2011. 9. 1. 10:57

유월의 햇살이 터질듯이 화사해서 팔을 걷어 부치고 마당 귀퉁이의  손바닥만한 텃밭에 앉았다. 여기저기 숭숭 솟아난 잡초를 뽑고 동네입구의 공사장에서 버린

거름 흙을 통에 담아서 낑낑거리고 끌고 왔다. 지난 해에도 상추와 오이씨를 뿌리고 정성스럽게 가꿨더니 한 여름 풍성하게 유기농(?) 채소를 먹을 수 있었다.

마트에서 사는 채소와 달리 고소한 맛이 별미였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다.

5월쯤 씨를 뿌리고 비닐로 덮어 주며 언제쯤 싹이 나오는지 조급증으로 매일 아침마다 살며시 들춰보는 소박한 긴장감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짜릿한 흥분은

느낄 수 없다. 10년을 넘게 살아도 어디를 가도 마주치는 낯선사람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뭔가 빠져나간 듯이 무료하리만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위에

작은 꿈을 심어 놓고 매일매일 열어보며 파란머리의 꿈을 심었다.

이제 나이 오십의 중반을 훌쩍 넘어 자고나면 솟구치는 흰머리를 감당하기에도 지쳐가는 세월... 가끔씩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소나기처럼 몇일씩 퍼붓기도

하고 추억마져도 쇠잔해져 가는 나이는 살면서 스쳐지나간 그리움 조차도 자꾸만 잊혀간다.

그래, 오늘 다시 정해진 짧은 시간 위에 작은 꿈을 심었다. 아마 올 여름은 그 것들과 얘기하며 토닥거리다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도 쇠잔해져 가는 추억

들도 담장 밑 작은 채소 밭에서 파랗게 익어날 것이다. 작지만 기다리는 셀레임을 만들어 주는 꿈을 키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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