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로 보는 세상 366

11월의 회상

청청하던 청춘의 여름은 갔지만, 찬 바람 부는 겨울이 오기엔 아직 이른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달 11월입니다. 인디언들은 11월을 '영혼이 따라올 수 있게 쉬는 달'이라고 불렀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기 전, 영혼이 육체와 발걸음을 맞출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달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땅거미가 빠르게 다가오는 겨울의 문턱 11월. 색바랜 나뭇잎이 바람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힘겹게 매달려있는 모습을 보며 오래도록 집 밖에서 서성이고 싶은 11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오던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잠시 쉬고 싶은 11월. 주먹 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청춘의 시간을 주워 담으며 아팠던 눈물까지도 사랑하는 11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빈 벤치

미국이 코로나 19 확진자가 290만 명을 목 전에 두고 사망자는 무려 13만 명에 이른다. 이 와중에도 트럼프 미 대통령은 11월 재선 승리를 위해서 지지층을 결속하려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백악관 대통령 참모도 2차 코로나 팬데믹을 우려하며 집회를 만류했다 하지만 권력 욕에 눈먼 트럼프는 자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미국에 젖 줄을 댄 멕시코도 미국과 국경을 잠정 폐쇄했다니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면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캐나다는 확진자 10만 명 사망자 8500명으로 코로나가 진정 국면으로 내려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느닷없이 날벼락을 맞아 사망한 사람이 8500명? 다행이라고 해야 되는 건지 이 소인배는 씁쓸하고 슬프다. 캐나다 역시 미국과 국경을 몇 달째 폐쇄하였으나 현재 미..

산다는 건...

입을 자물쇠로 채운 지가 열흘 째다. 혓바닥에는 곰팡이가 진을 치고 몇 안되는 언어조차도 기억에서 지워질까 겁이 난다. 티브이는 혼자서 떠들고 내 친구 소리통은 관객도 없이 노래하다 지쳐 쓰러졌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미셍은 한 끼니 일상에 몸을 숨겼다 창문 밖 하늘은 변함없이 그림인데 악마는 가을 낙엽 쓸어 가 듯이 미생들을 먹어 삼킨다. 그러나 아직도 허기진다며 미처 날뛴다. 산다는 것은 고작 연명의 투쟁이며 사랑은 고단한 여정의 길 가에 잠시 쉬어가는 정류장일 뿐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자위행위와 같은 것이기에 미생들의 삶은 위선과 허상으로 점철된 몽상일 뿐이다.

아내의 신발

“여보, 미역국, 배추 된장국은 10 개 씩 비닐 팩에 담아서 냉동고에 넣어 두었어. 팩에다 이름을 써 붙였으니까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아내는 자동차 안에서 주문 외우듯이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삼겹살 돼지고기 매운 무침도 6 팩에 나누어 담아서 냉동고에 얼려두었으니까 볶아 먹을 때마다 채소만 추가로 넣으면 돼. 자기가 할 수 있지? “음..” 나는 앞만 보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나물 무침하고 장 조림 밑반찬은 냉장고 앞 잘 보이는 곳에 두었으니까 상하기 전에 미리 먹고…” “네 알겠습니다 마님~” 아내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계속해서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청국장하고 닭 볶음탕은 냉장고 맨 위 칸에 있으니까 며칠 만에 한 번씩 끓여놔야 상하지 않으니까 잊지 말고…” 햄버..

다시 꿈을 그리자

코로나로 텅 비었던 봄 그리고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여름이 불쑥 찾아왔다. 지난겨울과 봄은 공포의 아우성으로 지구촌을 발칵 뒤집어 놓고도 코로나는 아직도 배가 고픈가 보다.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을 삼켜야 이 슬픈 전쟁이 끝이 날는지 아무도 모른 채 말이다. 이제 코로나는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일상의 적이 되었다. 이제부터의 삶은 보이지 않는 적과의 동침에 익숙해져야만 할 것 같다. 평생을 살아오며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낯선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야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원하던 원치 않던 보이지 않는 적을 피하서 비와 비 사이를 빠져나가 듯이 살아야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불행인가 아니면 다행인가. 내 나이는 노동으로 지탱해야 하는 삶의 굴레는 벗어났다..

이별 예감

등 판을 태울 듯한 8월의 햇살이 장맛비처럼 쏟아진다. 동네 뒷 산 언덕의 블루베리 밭에 가서 한 통 가득 블루베리를 Pick up 했다. 내 달 외손주한테 가는데 가져다주려고... 돌아오는 길에 드라이브 쓰루에서 옥수수 한 봉지를 사 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옥수수가 없다. 아무리 눈을 까 뒤집고 찾아도 없다. 다시 거길 갔더니 내가 돈 내고 거스름 돈만 받고 그냥 쓩~~ 가더란다 아~. 슬픈 이누무 나이..ㅠㅠ 둬 달 전만 해도 나 서울 오면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함께 먹자며 좋아하던 암 투병하던 친구가 자신도 견딜 수 없는 잔인한 고통에 삶에 희망을 놓았단다. 주치의도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지경이라며 이 달이 친구에게 마지막 달 일 거라고 했단다. 친구는 8월의 장마와 함께 어디로 가는지도..

마지막 편지

어제 친구들하고 너 보러 간다고 J에게 카톡이 왔다. 더 이상 늦으면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질 거 같아서 도둑처럼 몰래 너를 만나고 왔다고.. 너는 고문 같은 잔인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다 내려놓았으니 말할 기력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력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와중에 너는 내가 보고 싶단다고 해서 새벽에 전화를 받고 아침이 훤할 때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네가 가혹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에 시도 때도 없이 날마다 눈물을 훔치는 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니? 지난 5월에 네가 나에게 약속했잖아. 나 서울 올 때면 건강할 테니까 그때 맛있는 거 친구들이랑 함께 먹자고, 사는 건 네가 사고 돈은 내가 낸다고 했던 거.. 약속 잘 지키는..

이별 여행

장마가 휩쓸어 니라는 난리가 났다는 뉴스로 가득 차고 친구는 여름 장마 비에 휩쓸려 먼 길을 떠났습니다. 평화롭던 나의 여름이 친구와 이별 준비로 한 동안 슬프고 우울했는데 결국 친구는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늘 친구가 "한 줌의 재"가 되어 하늘로 영원히 날아갔습니다. 아침부터 시계를 계속 힐끔힐끔 훔쳐보며 보면서 그 친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젠 지난 날의 아련한 추억을 모두 모아서 기억의 한 편으로 가두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세상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변함없이 오늘이 가고 내일이 다시 올 거고 산 사람을 또 열심히 살아야 하니까.. 내일은 집을 떠나 몇 일 여행을 할까 하고 짐을 챙기는 중입니다. 밤하늘에 우주의 별이 남기고 걸어가는 발자국에..